요즘 연극을 보면 과거의 사건, 시간, 인물 등이 많이도 나온다.
특히나 다큐멘터리 연극의 유행(?)이 지나가서일까?
연대기를 기반한 작품이 많다.
나의 작품 <새들의 무덤>도 연대기를 기반한 작품이기도 하다.
극장에서 만나는 과거들은 낯설기도, 반갑기도, 그립기도 하다.
특히나 그 과거가 내가 살아왔던 시간과 겹쳐진다면, 그게 흥겨운 노래와 함께 한다면 박수가 절로 나온다.
대부분의 연극이, 그리고 특히나 과거들을 불러 오는 연극 작업들은 동시대를 거론한다.
동시대. 지금, 여기. 명확히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들이 지금, 여기, 관객들과 함께하는 극장을 공유할 때,
연극은 동시대를 거론한 그 증거를 관객에게 인지, 혹은 감각되게 해야하지 않을까?
과거를 이야기 하지만 동시대를 있게 한다.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창작자들은 고민하고 시도해야 한다.
과거에 관객을 모시고 잔치만, 혹은 굿판만, 혹은 안전한 멜랑콜리만 선사하면 안된다.
이런 글을 접한 적이 있다.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삽입한다.'
이 말은 그야말로 '허구'라는 것에 진짜 '리얼리티'를 삽입한다는 것이다.
쉬운 것 같지만 어렵다.
하지만 이 문장은
객석에 앉아 있던 관객을 자신들이 준비한 과거의 이야기에 참여 시킴으로써 지금 현재에도 그 과거가 진행되고 있다던가, 혹은 배우가 객석에 앉음으로써 자신들이 준비한 이야기가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사건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연극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위의 방법은 창작진이 동시대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의 인물들을 배우가 너무나 리얼하게 재현한다던가, 메타적으로 접근한다던가 등등의 방법도 지칭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인물을 지금, 여기에 있게 하는 것.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답이 있는 건 아니다.
무엇일까? 이 고민이 현재의 나의 고민이다.
'허구'에 '현실'이 개입하는 거.
최근에 본 가장 적절한 방법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지금, 여기 실제 벌어지고 있는 뉴스가 스트리밍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 그 뉴스에 등장하는 난민들 중 한 명이 실제 이야기에 개입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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