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매번 남산예술센터 공연에 늦는가? 남산 언덕을 매번 뛴다.
똑똑한 의사, 무명 소설가, 유능한 직장인,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옛 고딩 여자친구들이 어느날 한자리에 모인다.
때와 장소는 죽은 옛 친구의 기일에 맞쳐 그녀들의 아지트, 트랜스젠더 중년의 여자(실은 남자)가 운영하는 뷰티샵이다.
이어지는 반가움, 수다, 그리고 하나씩 풀어지는 비밀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비밀 중에서도 영원히 묻혀 있어야만 할 어떤 커다란 비밀이 밝혀지고...
아주 많이 봐왔던 이야기고 익숙한 플롯이다.
이 흔하고 익숙한 틀에서 본 공연의 개성은 무엇인가?
목소리. 극 중간마다 시간을 멈추고 흘러나오는, 마이크 소리로 들려지는 한 여자의 목소리.
목소리는 시 같은 소절과 함께 계속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한다. 그것은 관객들을 극 중간에 잠시 자신을 반추하게 한다.
힐링. 그렇다. 연극에도 힐링의 바람이 분 것이다.
마이크 소리는 결국에는 죽은 친구의 소리임이 밝혀지고 공연은 결국 죽은 여인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의 삶을, 경계를(공연의도에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 경계가 공연에서 명확하게 보여졌는지는 의문이다.) 되돌아 보도록 한다.
본 공연은 힐링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극의 씬들은 관객과 배우의 삶을 등치시켜 관객들을 편안하게 만들고 씬 사이마다 마이크 소리로 던지는 질문은 관객들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고 그 속에서 치유의 시간을 가지도록 한다. 다시 말해 관객들은 공연을 보며 웃다가도 자신을 위해 침묵을 한다. 연극에서 이토록 관객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위험한 시도이지만 본 공연은 그 위험을 정화로 훌륭하게 승화시킨다.
스톱.
힐링인 대세인 현재. 유행에 편승해 연극마저도 힐링을 장착해야 하는 것인가? 나의 답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연극은 정화를 숙명으로 두고 있지만 그 것은 연극자체, 다시 말해배우의 말, 행동, 무대의 환상, 이야기 등에서 느낄 수 있어야만 한다. 서로의 이해와 배려를 바탕에 깔고 화두를 던지는 것은 굳이 연극이 아니라 요즘 쏟아져나오는 자기계발서로도 충분하다.
ps.
-죽은 여인의 목소리는 마이크가 아닌 육성로 하는 게 어땠을까 싶다. 또한 시적으로 표현되는 그 질문이 좀더 예리하고 상상력으로 충만된 아름다운 어휘로 표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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