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1일 금요일

영화 'Hunger'

영화는 단순하다.
전반부 - 후반부.
상황, 인물 - 목도, 질문

-전반부
상황- 1970년대의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그 중에도 PIRA(온건파인 OIRA와 다른 과격파)의 무장투쟁 시국.

인물- RIRA들이 수감된 감옥의 교도원인 한 남자. 그 남잔 주먹이 항상 터져 있다. 이유는 뻔하다. 수감자들을 폭행했을 테니깐. 역시나 영화는 그렇게 보여준다. 그 남자는 그 고통이 싫지만 감내해야한다. 그래서 허무하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담배를 핀다. 그러다 RIRA에게 총에 맞아 죽는다.

인물- RIRA에 새로 수감되는 남자. 정치범으로 인정해달라 말하며 죄수복 입기를 거부한다. 그에겐 모포 한 장이 던져진다. 감방으로 쳐박히는 남자. 그 곳엔 자기와 다르지만 같은 동지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감옥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오줌을 감방문 밖으로 흘려 교도원에게 반항한다.

상황- 이어지는 감옥의 인권 유린.

인물- 진작부터 수감 되어있던 우두머리 한 남자. 면회 온 신부와 논쟁을 벌인다. 남자 왈. 자기는 죽을 것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신부 왈. 그래도 살아야한다. 신이 주신 생명. 너는 순교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냐? 역사의 한 인물로 남고 싶은 것이냐? 그 것이 이 난국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남자 왈. 순교자도 영웅도 되려는게 아니다. 신념을 지키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고 그 것이 인간이다. 신부 왈. 이미 결정해놓고선 왜 불렀나? 남자 왈. 나도 인간이다. 다짐의 확인 혹은 두려움의 고백. 하지만 영화는 이 것을 관객과 교감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공이 도대체 누구인가?

-후반부
목도- 그 남자의 단식투쟁. 이제야 주인공이 결정되었다. 후반부는 오로지 이 장면들의 연속이다. 남자의 살은 바짝 말라가고 신체 기관들은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미카엘 파스빈더의 혼신을 다한 연기를 여기서 만날 수 있다.) 감독은 우리에게 이 신체를 목도하게 한다. 어떠한 이념과 갈등과 스토리도 개입시키지 않는다. 오로지 망가져 가는 한 남자의 고통과 숭고만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잔혹극.

질문- 감독은 이 잔혹을 통해, 썩어가는 종기를 통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어하는 것 같다. 신념을 위해 한 생명이 이토록 고통스러워야 하는 이유는 뭔가? 감독은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단지 어린 시절의 크로스컨트리를 하며 산으로 호수를 뛰어 다녔던 순간을 보여줄 뿐이다. 그 순간은 보통의 영화처럼 찬란하게 보여지지 않고 어떤 두려움을 간직한 소년의 표정으로 귀결된다. 세상은 인간에게 언제나 두려운 대상이지만 그 속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말하는 것 처럼.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리고 열거했듯 보통의 영화가 진행하는 플롯과 인물 전개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단지 늦게 등장한 한 인물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만 던진다. 그래서 영화의 쇼트는 영화안에서 살지 않고 영화의 밖, 즉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라고 강요하는 쇼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 마지막 플래시 백 시퀀스만은 그렇지 않다. 왜냐? 그것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이야기의 쇼트들로서 실화를 통해 영화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에 대한 영화감독으로서 답할 수 있는 아름다운 화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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